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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째 환자의 마음 읽기에 충실한 노만희정신건강의학과의원 (상)volume.46 2024. 5. 2. 18:25
“환자가 의사를 완전히 믿는다는 착각 버려야”
현장 전문가들의 의견 담은 현실성 있는 정신건강 정책 중요!“이제는 인식이 바뀌어서 그동안 거부감이나 부담감 때문에 정신질환으로 병원에 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병원에 찾아오는 숫자가 늘었습니다. 특히 인구가 늘어나면서, 과학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성이 메말라 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인성이 메마르다는 것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환경에 노출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것들로 인해 정신과적인 여러 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_ 노만희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정부는 지난해 말, 전 주기적으로 국민 정신건강을 지원하는 ‘정신건강 정책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등 각종 정신건강 관련 지표에서 문제점을 드러냈을 뿐 아니라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한 고립감 확산과 경제난 등 사회환경 변화로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이에 정부는 정신건강 정책을 혁신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보고 “정신건강정책 대전환, ‘예방부터 회복까지’”라는 비전을 선포하며 4대 전략(①일상적 마음 돌봄 체계 구축, ②정신응급대응 및 치료체계 재정비, ③온전한 회복을 위한 복지서비스 혁신, ④인식개선 및 정신건강 정책 추진체계 정비) 및 핵심과제를 추진키로 한 것이다. 특히 청년층의 정신건강 검사 주기를 현재 10년에서 2년으로 줄이고, 검사 질환도 우울증에서 조현병과 조울증 등까지 확대한다고 밝혔다.
노만희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과거에 비해 없던 병이 새로 생겨났다기보다 점점 스트레스가 많아지는 사회 속에서 전보다 정신 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한 가지 고무적인 사실은 과거에 비해 인식이 달라져 자발적으로 병원에 오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특히 요즘에는 젊은 층이 정신 질환으로 병원을 자주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42년째 우리나라의 정신 질환을 치료해 온 노만희 원장은 정부에서 추진하는 이러한 정책들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늘 계획은 거창하지만 실제로 실현되는 것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내용은 다 좋아요. 좋지만, 그게 실제로 실현되는 것들이 많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엄청난 예산이 필요한데, 그런 예산을 주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굳이 애써서 따오려는 사람도 없습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 계획에 실제 현장에 있는 현장 전문가들의 의견은 별로 반영이 안 돼 있다’라는 게 문제입니다.” 그만큼 노만희 원장은 환자를 보는 전문 의사들의 의견이 반영된 정책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노만희 원장은 우리나라 정신건강의학과 1세대 전문의인 아버지의 뒤를 이어 지금껏 한 길만 걸어왔다. 남다른 소신이나 뜻이 있었다기보다는 그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겨왔기에 당시 모두가 가고 싶어 했던 과를 멀리하고 정신건강의학과를 택한 것이다. 당시 아버지가 세운 정신과 의원은 우리나라 최초로 입원실이 있는 4층 건물에, 대학병원 수준의 시설 및 의료진을 갖춘 곳이었다. 노만희 원장은 낮에는 대학병원에서, 밤에는 이곳에서 밤낮으로 환자를 진료하며, 우리나라 정신 질환에 대해 공부하고 경험을 쌓아갔다. 특히 자신이 정신과 레지던트가 되고 처음으로 주치의를 맡은 조현병 환자를 통해 사람을 지배하는 환청의 무서움을 실제로 경험하게 됐다. 그날 이후 조현병 환자들을 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할 만큼, 환자를 보는 안목과 치료하는 마음가짐을 달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저는 언제나 ‘환자가 얘기하지 않아도 그 안에는 뭔가 있을 수 있고, 얘기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가 있다. 나를 완전히 믿는다고 착각하면, 내가 중요한 걸 더 놓칠 수 있다. 항상 조심해야 하고, 그래서 더 열심히 봐야 한다. 그다음에 더 확실하게 좋아질 때까지 챙기자’라고 다짐하게 됐습니다. 저는 요즘 분위기처럼 빨리 입원시켜서 빨리 치료하고, 빨리 사회에 복귀시켜야 하는 그런 시스템을 별로 찬성하지 않습니다. 빠른 복귀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떤 상태를 만들어서 복귀시키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죠.”
노만희 원장은 이번 인터뷰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할 일은 그저 열심히 공부하면서, 환자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고, 잘 치료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말의 의미는 언제나 높은 곳만 바라보고 많은 것을 추구하는 의료계와 현시대 속에 의사의 본질을 꿰뚫는 가장 단순하지만 깊이 있는 철학이었다.
인터뷰이. 노만희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글. 박하나 편집장
1. 노만희정신건강의학과의원이 어느덧 16년 차를 맞이하게 됐습니다. 노만희정신건강의학과의원이 추구하는 가치와 비전은 무엇인지 그 성장배경에 대한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사실 진료를 하는 데 있어서 어떤 특별한 가치를 둔다기보다는, 그저 열심히 공부하고 진료 하는 것입니다. 의사는 공부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다음에 환자를 보는 경험이죠. 병원은 사실 환자가 많이 와야 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저는 훌륭한 의사보다 ‘우리나라에서 괜찮은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다’라는 게 목표였습니다. 의사들 간의 치열하게 경쟁해서 내가 제일이어야 하는 생각 자체가 욕심인 것 같아서, 괜찮은 정신과 의사 중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잡은 것이죠.
2. 원장님의 아버지께서 우리나라 정신건강의학과 1세대 전문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버지에 이어 우리나라의 정신건강을 책임지고 계시는데요. 특히 정신건강의학은 아무나 선택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어떤 계기로 선택하시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사실 우리 아버지는 순천향대 서울병원을 처음에 설립하실 때 개국 공신 하셨습니다. 지금의 강북 삼성병원, 그다음 서울백병원, 순천향대 서울병원에 다 정신과를 개설하신 창립 멤버이셨고요. 그전에는 가톨릭의대에 계셨었고, 그러다 순천향대 서울병원에 계시다가 나오시면서 병원을 개원하시게 된 것입니다.
결국에는 저도 그 영향을 받은 게 분명한데, 제가 5남매 중에서 장남입니다. 또 집 안으로는 장손이죠. 사실 우리 아버님이 저에게 “내가 의사니까 너도 의사가 되어야지”라는 말씀은 한 번도 하신 적이 없어요. 또한 “네가 의사가 됐으니까, 나처럼 너도 정신과 의사를 해야지”라고도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포함한 친척들 대부분은 “너는 당연히 의사가 되어야 한다”라고 많이 하셨거든요. 저는 그래서 당연히 해야 하는 줄 알았어요. 고등학교 때 1, 2, 3 지망을 쓰는데, 선생님께서 하고 싶은 직업이 있으면 쓰라고 해서 전부 의사를 썼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 불려 간 것이죠. “넌 성의가 없다”라고 하셨는데, 사실 저는 그게 아니었거든요. 저는 정말 의사밖에 생각한 게 없었습니다. 그래도 선생님께서 다시 쓰라고 하시길래, 1번 의사, 2번 공군사관학교, 3번 육군사관학교로 썼습니다. 그것은 제가 전혀 생각도 안 해봤던 일이고, 그냥 형식적으로 써낸 것입니다. 그리고 의과대학 가는 것만 목표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소신이 있거나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의과대학을 다니면서는 무슨 과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소위 ‘내·외·산·소’라고 불렸는데,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로 이 4개 과는 10등 안에 들어야지만, 레지던트가 가능할 정도로 공부를 잘해야 했습니다. 그 정도로 의미가 있는 필수과였거든요.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반대죠. 저는 성적과 무관하게 애초부터 그쪽은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의대를 가면서부터는 ‘과연 정신과 의사가 나한테 맞을까?’를 고민하면서 다녔거든요.
그러다 1976년도 본과 1학년 때, 저희 아버님이 대학병원에 계시다가 입원실이 있는 정신과 의원을 개원하셨습니다. 당시 정신과 의원 중에서 입원실이 있는 4층 건물에 거의 대학병원 수준의 시설 및 의료진을 갖춘 정신과 의원을 최초로 개설하신 것입니다. 현재 이곳은 순천향대 서울병원의 연구동 건물이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내가 환자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환자들을 직접 접해볼 기회가 되면 정신과가 나와 맞는지를 판단해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버님께 방학 때 이곳에서 아르바이트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정신병원에 가면 보조사들이 있습니다. 남자 보조사들 경우, 어떤 때는 병실 안에서 환자들을 붙들어야 해서 힘도 써야 하고, 간호사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저는 그것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방학 때마다 먹고 자면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래서 환자들과 대화도 많이 하고, 기타를 치면서 노래도 하고, 같이 게임도 하면서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스스로 궁금증이 생겨 정신과 관련 서적도 보게 됐습니다. 이렇게 몇 년을 하면서 ‘저는 정신과가 맞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는 졸업을 하면서 마지막 12월쯤에 자기가 원하는 과를 선택할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인턴이 끝난 다음에 시험을 봐야 하지만, 당시는 졸업하기 전에 과가 정해졌습니다. 졸업반 때 아버지께 정신과를 가겠다고 말씀드렸더니,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더니, 자신이 해보니까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힘든 일이니까 저보고는 하지 말고, 군대 다녀온 후 앞으로 신경과가 유망해질 것이기에 유학 가서 공부하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 신경과가 없었기 때문에 미국에 가서 신경과 공부를 하고 오라는 말씀이셨죠. 저는 신경과가 우리나라에 정말 필요하고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건 알지만, 정신과 밖에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거부하고 정신과로 선택하게 됐습니다.
3. 42년째 환자들의 정신질환을 치료하고 계신데요. 과거에 비해 정신과 질환도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요즘은 어떤 질환으로 환자들이 병원을 자주 찾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과거에 비해서 없던 병이 새로 생겨난 것은 아닌데, 이제는 인식이 바뀌어서 그동안 거부감이나 부담감 때문에 병원에 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병원에 찾아오는 숫자가 늘었습니다. 특히 인구가 늘어나면서 자연히 환자 수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또 한 가지는 과학 문명이 발달을 하면 할수록 인성이 메말라 가게 됩니다. 결국 인성이 메마르다는 것은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 환경에 노출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것들이 더 영향을 줘서 정신과적인 여러 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은 분명합니다.
4. 특히 우울증이나 조현병 같은 경우, 예전에 비해 좀 많이 늘어났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병원을 찾는 나이대 역시 과거와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합니다.
조현병의 경우는 유병률을 1%로 봅니다. 그러면 100명 중 1명이 조현병에 걸릴 수 있는 확률이 매우 높다는 뜻입니다. 그 1%는 제가 정신과를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인구가 5천만 명이라면, 최소 50만 명은 앓고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울증도 거의 비슷한 수준입니다. 6~7명 중의 1명이 평생 살아가면서 한 번쯤 앓고 지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울증이든 조현병이든 환자들이 다 병원에 와야 하는데, 실제로 병원에까지 와서 치료받는 경우는 많아야 30% 미만입니다. 나머지는 고통을 참고 견디면서 평생을 살아간다든지 것이겠죠.
특히 요즘에는 젊은 친구들이 정신질환으로 병원을 자주 찾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젊은 사람들에게 병이 많이 생겨서가 아니고, 제가 볼 때는 사회적 인식이 달라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다못해 요즘에는 중학생 아이들이 집에 이야기하지 않고 상담을 받겠다면서 자기 혼자 병원에 찾아오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우리가 접근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은 부모가 “우리 애가 어디 아픈 것 같아요”라면서 데리고 오는데, 아이가 스스로 상담이 필요해서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아이가 먼저 오는 경우가 오히려 더 힘든 케이스가 될 수 있어요. 그것은 아이와 부모가 그 부분이 상의가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아이 혼자 답답해서 오는데, 그렇다고 부모 동의 없이 제가 아이와 둘이 풀 수 없는 문제입니다. 또 20대들도 많이 옵니다. 요즘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불안장애가 많잖아요. 또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오시는 분도 많은데, 요즘은 그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5. 요즘은 20대라 하더라도 어떻게 보면, 부모의 기대 속에서 공부만 하고 자라다 보니 사실 온전한 성인이라고 보기 어려운 부분도 많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사실 어른이 되지 못한 2~30대가 많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문제로 정신과를 가는구나, 가니까 도움이 되더라’ 하는 부분이 많이 확산되어, 예전보다 병원의 문턱이 낮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언론이나 방송에서 이런 부분을 잘 다뤄줘야 한다고 봅니다. 요즘에 공황장애 환자들은 병원에 잘 옵니다. 왜냐하면 유명한 사람들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공황장애를 앓았다고 밝히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가는 정도이니, 나도 가보자고 해서 오게 된 것이죠.
그런데 조현병 같은 경우는 사실 자기가 창피한 것을 모릅니다. 왜냐하면 조현병의 주 증상은 피해망상과 환청입니다. 그런데 피해 망상과 환청은 그게 병의 증상이라 생각을 못 하고, 사실로 믿는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조현병 환자는 어떤 사람이 ‘나에 대해서 안 좋은 마음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나를 죽일 것 같다’는 생각을 실제로 믿어버립니다. 그들은 사실로 믿기 때문에 병원에 갈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만약 사실이라면, 내가 도망을 가든지 아니면 날 해치지 못하게 내가 먼저 공격하는 것이죠. 얼마 전에 일어난 서현역 칼부림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피해자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어떻게 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상해를 입힌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6. 이렇게 치료하시는 환자가 워낙 많으신 가운데, 혹시 오픈하셔도 될 만한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면 누구인지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사실 환자 이야기를 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사연 중에 굳이 소개하자면, 제가 정신과 레지던트가 되고 처음으로 주치의를 맡은 조현병 환자가 생각이 납니다. 그 환자는 대학생이었는데, 정말 환청이 들린다면서 누가 자신을 쫓아온다고 숨어 있기도 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주치의를 맡아 6개월간 입원 치료하고, 정말 첫 환자이니 나름대로는 공부해가면서 온갖 정성을 다 쏟았기에 좋아지긴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퇴원을 하루 앞두고 마지막 면담을 하는데, 그 환자가 “선생님께 하지 못한 얘기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얘기든지 괜찮다”라고 말했더니, 환자가 입원해서 6개월 병원에 있는 동안 첫 2개월은 자기 대변을 자기가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환청이 그렇게 시켰다는 것입니다. 환청이 그렇게 무섭습니다. 환청이 죽이라고 하면 죽이기도 하는 것이죠. 나중에는 그 환자가 치료받고 환청이 없어졌지만, 환청이 그 정도로 사람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교과서보다도 직접 환자를 통해서 경험한 이후로, 나중에 조현병 환자들을 보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환자가 얘기하지 않아도 그 안에는 뭔가 있을 수 있고, 얘기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가 있다. 나를 완전히 믿는다고 착각하면, 내가 중요한 걸 더 놓칠 수 있다. 항상 조심해야 하고, 그래서 더 열심히 봐야 한다. 그다음에 더 확실하게 좋아질 때까지 챙기자’라고 다짐하게 됐습니다. 저는 요즘 분위기처럼 빨리 입원시켜서 빨리 치료하고, 빨리 사회에 복귀시켜야 하는 그런 시스템을 별로 찬성하지 않습니다. 빠른 복귀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떤 상태를 만들어서 복귀시키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죠.
사실 정신과 개념에서 완치라는 건 없습니다. 조현병 같은 경우, 모든 조건이 완벽한 상태에서 제대로 치료했을 때 가능성을 3분의 1로 봅니다. 거의 완치에 가까운 수준이죠. 그다음 3분의 1은 증상을 가지고 있으면서 사회에 적응해서 살 수 있는 정도이고, 나머지 3분의 1은 치료를 해도 점점 더 나빠지는 것입니다. 보통 그런 정도로 보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7. 그만큼 우리나라는 조울증이나 우울증이 가장 심각하지만, 이 환자들에 대한 복지는 매우 부족하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사회적인 시스템이나 정책적인 부분들이 많이 변화되어야 할 텐데요. 원장님이 보시기에 어떤 부분이 어떻게 보완되어야 한다고 보시는지 말씀해 주세요.
요즘에는 지자체별로 정부에서 이것저것 한다고 열심히 하긴 하는데, 정말 필요한 사람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갈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은 아직 아직 멀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계획은 거창한데 현실성 없는 계획이 많습니다. 정신 건강 확립을 위해서 5년에 한 번씩 정부에서 계획 세워서 국회에 보고하게 돼 있어요. 이제까지 5년에 한 번씩 나오는 계획들은 거의 다 비슷합니다. 그런데 내용은 다 좋아요. 좋지만, 그게 실제로 실현되는 것들이 많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엄청난 예산이 필요한데, 그런 예산을 주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굳이 애써서 따오려는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 계획에 실제 현장에 있는 현장 전문가들의 의견은 별로 반영이 안 돼 있다’라는 게 문제입니다. 정부에서 예산을 많이 써야 하는데, 이번 정부도 그런 쪽 예산을 많이 줄이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인터뷰이. 노만희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글. 박하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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