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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Neuro–Architecture - Weaving space & Healthvolume.48 2024. 7. 2. 18:16
Neuro–Architecture - Weaving space & Health
신경건축학 - 공간과 건강의 뜨개질(사)대한작업치료사협회는 지난 2024년 6월 1일, 가톨릭대학교 성의교정 의과학연구원 1층 1002호 강의실에서 ‘2024년 작업치료사를 위한 국제학술세미나 : Neuro-Occupational Science for Enabling Occupation & Participation : Occupation-Centered Environmnet Design(작업과 참여 가능화를 위한 신경-작업과학 : 작업 중심의 환경 설계)’를 개최했다. 이날 발표된 노태린 대표(노태린앤어소시에이츠)의 ‘Neuro–Architecture - Weaving space & Health(신경건축학 - 공간과 건강의 뜨개질)’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노태린 대표는 이번 강의에서 병원 인테리어를 진행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 및 협의와 조율 과정, 그리고 신경건축학이 접목된 디자인에 대해 심도 있게 설명했다.
『먼저 집 디자인을 진행할 경우, 그곳에 사는 이들의 모습과 언어가 디자인에 충분히 반영되지만, 병원 디자인은 생각만큼 뜻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만큼 디자인 과정에서 점점 배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병원을 디자인할 때는 사용자들과의 협의 및 조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병원 디자인을 진행하면서 겪게 되는 노하우와 경험, 그리고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전하고자, 지난 2007년에 처음으로 <종합병원 리모델링>이라는 책을 쓰게 됐다.
그런데 이름 자체가 무겁다 보니 사람들이 책을 안 사더라(웃음). 아마 예전에 TV에서 보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GENERAL HOSPITAL’이라는 미국 드라마가 방영했었다. ‘GENERAL HOSPITAL’은 병원에 오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말랑말랑하게 담아내는 드라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를 생각하고 <종합병원 리모델링>이라는 제목을 지은 것이다. 그러나 책이 잘 소개되지 않아, 개인적으로 1천 권의 책을 샀고, 각각 여러 병원에 돌렸다. 그 자체가 우리 회사의 브로셔가 된 셈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예쁜 집을 고치는 디자이너에서 갑자기 병원에 뛰어든 디자이너가 되어버렸다. 그 영향 때문인지 많은 병원들에서 콜이 왔고, 국내 유수의 많은 병원들을 거의 디자인할 정도로 병원 인테리어 전문가로 성장했다. 이후 전국에 많은 병원을 뜯어고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난 후, 두 번째 책 <종합병원 확 뜯어고치는 여자>(2011)을 펴냈다. 이 책에서는 본격적인 병원 인테리어 전문가로서의 활약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수술실의 컬러에 변화를 준다든지, 병원의 환경을 개선한다든지, 병원 디자인에 있어 다양한 시도와 아이디어를 책에 담아냈다. 이러한 변화는 결국 나만의 생각으로 나온 것이 아니다. 사용자들과 다 같이 이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새로워진 병원 디자인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나는 현재까지도 무수히 많은 병원 현장을 다니고 있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계속해서 병원 현장으로 뛰어 들어갈 생각이다.
사실, 의사 선생님들을 설득하기란 그리 쉬운 게 아니다. 단순히 ‘이렇게 하면 좋다’거나 ‘이렇게 하면 예쁘다’ 등의 말로는 절대 통하지 않는다. 에비던스 베이스드 디자인(EVIDENCE-BASED DESIGN)처럼 근거에 입각한 디자인의 중요성을 제시해야지만, 의사 선생님이 돈을 탁 내면서 “아 그래, 한 번 멋지게 해 봐”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열심히 공부해가며 다양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 그중 신경건축학을 고려한 사용자 중심 디자인 프로세스 적용연구(노태린/ 2019)를 수행했으며, 이를 토대로 공간의 만족도나 행복감이 실제로 얼마나 올라갔는지에 대해 직접 실험을 통해 증명할 수 있었다.
1. 신경건축학과 공간
나는 1년에 100번 정도 청계산에 오른다. 그런데 오늘은 세미나 준비로 아침 산에 오르지 못했다. 보통 산에 오르기 위해 아침 5시 반에 출발하고, 1월과 2월 겨울에만 6시에 출발한다. 이렇게 산에 오르는 이유는, 정말 디자이너로서 일하다 보면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고 또 육체적으로 되게 고통스러울 때가 많다. 그런데 혼자 산에 조용히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과정을 통해서 마음이 치유된다. 또 생각을 정리해야 되는 상황일 때 산에 오르면 많은 도움이 된다. 이제는 산에 오르는 루틴이 나의 삶이 되어 버렸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 아침 일찍 일어나면 하루가 길어 좀 피곤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 약간의 피곤함이 습관이 되어 버렸고, 하루를 먼저 시작한다는 뿌듯함이 크다. 또 그만큼 새벽 산행으로 인한 튼튼한 몸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나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이렇게 나는 산에 올라갔을 때 힐링이 된다. 여러분들은 어떠한가? 숲이 보이는 카페에 가거나 바다가 보이는 창밖 뷰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그 자체만으로 힐링이 되지 않은가? 분명 나만의 힐링 장소나 치유받는 공간들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나는 매일 피곤한 몸으로 내 방에 와서 넓은 창가 밖의 풍경을 보면 피곤이 싹 풀린다. 그래서 창가 앞에 침대를 두고 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빛이 들어오는 게 싫어서 방에 암막 커튼을 치기도 하는데, 나는 항상 아침 일찍 일어나 커튼을 활짝 열어놓고, 서광이 들어오는 모습을 감상한다. 그 자체가 너무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나름대로의 행복감을 공간에 적용하기도 하는데, 아마 오늘 이 강연 이후로 집에 가서 침대의 방향을 바꾸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한가지 질문을 드리자면, [공간은 ( ? )가(이) 담긴다.]에서 괄호 안에 답은 무엇일까? 어떤 이들은 기억이나 추억, 시간이라고 답한다. 대부분 ‘건축학개론’이라는 영화를 봤을 것이다. 극 중 주인공이 어린 시절 살았던 곳에 가서 과거의 향수나 기억을 떠올리고 추억하는 모습들이 있다. 아마도 누구나 한 번쯤 극 중 주인공처럼 과거 추억이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엔 [공간은 (스토리)가 담긴다.]고 볼 수 있다. 분명히 어떤 기억이나 추억들이 공간 안에 스토리로 표현될 것이다.
외형상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신전 같은 곳 있는데,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확 트여 있다. 이곳은 바로 병원이다. 고대 병원은 자연과 접해 있고 확 트여 있어 답답하지 않다. 그만큼 당시에도 치료의 공간은 자연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현재 우리도 건강을 생각하면, 이러한 자연적인 요소나 친환경적인 분위기가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그저 일반적으로 자연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기보다는 이와 관련된 이론이나 학설들을 증명해서 보여주는 게 병원 건축에 있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에드워드 윌슨(Edward Osborne Wilson)이라는 생물학자는, 바이오필리아 효과(Biophilia effect)에 대해 처음 언급했다. 바이오필릭(Biophilic)은 자연을 뜻하는 바이오(Bio)와 사랑을 의미하는 필리아(Philia)가 합쳐져, ‘자연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말이다. 이 생물학자는 바이오필리아라는 개념을 1984년도에 본인의 저서에 제시한 이후로 계속 사용되고 있는 단어라 할 수 있다. 에드워드 윌슨은 ‘사람은 본능적으로 생명이나 자연과의 관계를 원하고 있어 자연에 접촉함으로써 생산성 향상, 스트레스 해소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다.’라고 말했다. 특히 이와 관련해서 아주 자세하게 설명한 부분이 나오는데, ‘‘인간은 초자연적 지성체의 창조물이 아니라, 우연과 필연을 통해 나온 수백만 종 중 하나’이므로 ‘인간은 지극히 겸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우주에서 볼 때 ‘지구는 오후 몇 시간 동안 뉴저지주 티넥의 한 정원에서 꽃잎 하나 위에 앉아 있는 진딧물 한 마리의 왼쪽 더듬이 두 번째 마디와 같다.’고 할 정도로 인간의 존재는 아무것도 아니기에 늘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좋은 말을 남겼지만, 증명은 하지 못했다. 바이오필리아 가설을 만들기는 했으나, 과학적인 근거 기반을 만들지는 못한 것이다.
이후에 등장한 환경심리학자인 로저 울리히(Roger Ulrich)가 근거 기반 디자인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로저 울리히는 1971년부터 1982년까지 펜실베니아주 교외의 한 병원 담낭 제거 수술 환자를 관찰했으며, 그 결과 ‘병실 창으로 자연 풍경이 보일 때 환자들은 더 빨리 회복되었다’고 증명했다. 당시 수술환자는 몇 명이 되지 않았지만, 이러한 임상적인 결과를 유추하고 비교해서 발표한 것이다. 그만큼 에드워드 윌슨이 근거 기반의 역할을 만들었다면, 로저 울리히(Roger Ulrich)기 가설을 만들어, 우리가 이제 ‘근거 기반 디자인이다’라고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신경건축학에 관해 설명하고자 한다. 신경건축학을 아마도 들어 봤을 것이다. 말 그대로 ‘Neuroarchitecture = 신경과학(neuroscience) + 건축학(architecture)’이다. 이렇게 가설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 바로 LA에 있는 솔크 연구소(Salk Institute)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소아마비 백신 프로젝트 디렉터인 조너스 솔크(Jonas Salk (1914 – 1995)) 박사는 연구 중에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게 됐다. 그러다가 고딕 스타일 아시시(Assisi) 수도원의 천장을 보면서 뜻밖의 아이디어가 떠올라,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후 백신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천장의 높이’가 창의적 연구에 미치는 영향이 높다고 판단한 솔크 박사는. 건축가 루이스 칸과 함께 솔크 연구소(Salk Institute) 만들게 됐다. 당시 솔크 박사는 설계에 앞서 다른 곳보다 높은 천장을 루이스 칸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그렇게 완성된 솔크 연구소에서 12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만큼 좋은 결과를 내고 있다. 그러한 성과 때문인지 실제 이 연구소에서 많은 학회 및 세미나가 열리고 있고, 그중 건축 신경과학 아카데미(Academy of Neuroscience for Architecture, 이하 ANFA)에서 2년에 한 번씩 연구 및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도 현재 신경건축학회가 있다. 나 역시 평생 일원이기도 하다. 원래 이 자리에는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님이 오셔서 발표해야 하는데 현재 미국에 가 계신다. 그분이 이제 나와 같이 신경건축학회 일원으로 나가서 발표도 하고 있고, 또 신경 건축에 대한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여기에는 신경과학자, 건축가, 의사, 디자이너, 조경가, 사회복지사, 의료기기 종사자 등 다학제적 분야의 연구 모임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계신 모든 분이 참여하셔도 좋을 것 같다. 재미있는 소재의 강연들이 많다. 현재 국내의 신경건축학은 아직 활발하게 뭔가를 연구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학회는 작지만, 정신과 분야에서 매우 많은 부분들을 도입하고 있다. 1년에 6번을 온라인으로 하고, 한 번의 학술 발표대회가 있다.
신경건축학에 관련된 책들도 소개하고자 한다. 콜린 엘라드(Colin Ellard)가 책을 펴냈는데, 한국어로 번역된 책 이름은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이다. 콜린 엘라드의 아버지는 건축에서 적산을 하던 분이다. 적산은 쉽게 말해 건축할 때 돈이 얼마나 나오는지, 견적을 뽑는 일이다. 콜린 엘라드는 아들로서 어린 나이에 여러 건축 공간들을 경험해 왔다. 특히 스톤헨지(흙으로 쌓아서 만든 제방 안에 거대한 돌기둥을 세워놓은 것)나 폐허가 되는 공간들을 많이 가본 것이다. 콜린 엘라드는 책 서론에서 ‘스톤헨지를 봤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저 돌을 도대체 누가 갖다 놨을까? 우주인일까? 하는 궁금증과 경외심으로 보게 되는데, 우리 아빠는 스톤헨지를 보면 돈으로 저게 얼마일까? 들어 올리는 데 얼마나 걸릴지 계산하지 않을까를 생각할 것이다’라며 재미있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콜린 엘라드는 ‘마음의 장소 : 신경건축은 일상생활의 심리지리학(2015)’이라고 말하며, 이와 관련해서 상도 많이 받고, 테드 강연자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만큼 이 책이 신경 건축학을 이해하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은 <힐링 스페이스>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절판된 상황이다.
또 에스더 M 스턴버그(Esther M Sternberg) 애리조나대학교 의대 교수가 쓴 <공간이 마음을 살린다> 역시 공간에 심리적인 영향이 미치는 사례들을 굉장히 재미있게 풀어냈다. 아마 이 책을 보면, ‘근거 기반 디자인을 토대로 이런 공간이 이렇게 만들어졌구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의료 시설이나 다양한 공간들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구나’를 경험하기에 좋은 책이다.
이렇게 신경건축이 발전하게 된 계기는 결국, 신경과학의 발달과 뇌 영상 장치의 등장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뇌의 어떤 상태에 대해 촬영이 가능하기 때문에 마인드 리딩 테크놀로지라는 관점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뇌 모양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우리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행복할 때 사람의 뇌 모양은 어떠한지, 스트레스받을 때는 어떤 모양인지, 해마가 공간 지각에 관여할 수 있는지 없는지 살펴볼 수 있다.
그렇다면 힐링 스페이스, 즉 우리가 어떤 공간에서 행복하게 치유받고 평온함을 느낄 수 있을까? 고흐의 편지 내용 중 ‘정원에서 오랜만에 작업을 즐겁게 했으며, 정원에 만개한 꽃들과 그 안에서의 작업이 건강에 매우 도움이 되고, 이를 통해서 심신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라고 나와 있다. 그만큼 고흐는 정신병원에 있었지만, 바깥의 자연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정화될 때 그림을 그렸다. 그러한 장소가 결국에는 우리의 포커스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어떤 공간에서 가장 행복할까?
병원 디자인을 진행할 때 약간 화가 났던 부분은, 대체로 병원장님들은 자기 공간만을 생각하는 것이다. 일단 자기가 다니는 동선이 짧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차트도 빨리 갖다줘야 하고, 모니터도 바로 내 앞에 있어야 하는 등 환자들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리고 간호사들은 하루 종일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에서 있는데, 의사 본인은 창가 자리를 배치해달라고 요구한다. 간호사들은 온종일 인공조명 아래 인포메이션에 서서 일하는데 과연 일이 제대로 될까? 그래서 디자이너들은 원장님께 “요즘 젊은 친구들은 직장에서 자신의 공간이나 근무 환경을 제대로 개선해주지 않으면 거의 이직합니다. 그러한 이유들이 다 있어요. 요즘 환자경험평가도 있어서 신경쓰셔야 됩니다”라고 이야기하면, 그제서야 좀 신경 쓰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만큼 요즘은 원장님들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환자와 직원들을 위한 공간의 중요성을 많이 알고 있다.
근거기반 디자인에서의 신경건축학 연구 결과1
요즘 사람들은 근거 기반 디자인에서의 신경건축학 연구 결과를 조금씩 경험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천장이 높을 때 창의력이 상승하거나 풍광이 좋을 때 차분해지고, 햇볕이 잘 들 때 유대감이 상승되며, 벽지가 빨간색일 때 주의력이 상승된다는 내용들이 근거로 나와 있다.
그중 미국 미네소타 대학의 조앤 마이어스-레비 교수는 천장의 높이를 2m 40cm, 2m 70cm, 3m로 30cm씩 다르게 한 후 실험 참가자들에게 창의적 문제를 풀도록 했다. 그 결과 가장 낮은 천장의 실험 참가자들은 문제를 거의 풀지 못했고, 3m의 참가자들은 2m 70cm 참가자들보다 2배 정도 문제를 잘 풀었다고 한다. 이를 토대로 천장이 높을 때 창의력이 상승했다는 결과를 경험했고, 30cm씩 높아질 때마다 추상력과 창의력이 2배씩 높아짐을 발견한 것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신경 건축학에 대해 사람들이 더 관심을 두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 유명한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O. Gehry)는 미국의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2003) 홀이나 스페인의 구겐하임 미술관(1997), 루이뷔통 메종 서울(2019) 등 금속을 접어서 부유하듯이 아름답고 멋진 건축물을 만든 인물로 유명하다. 프랭크 게리는 앞서 언급한 건축 신경과학 아카데미(Academy of Neuroscience for Architecture, 이하 ANFA)에서 자신의 건축물에 대해 발표를 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내가 만든 대부분의 건축은, 휴지를 접어서 던졌더니 그 모양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렇게 지은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를 지켜본 신경 과학자들과 건축가들이 약간의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생각할 때 어떤 근거 기반 디자인은 종이를 접은 후의 모습을 보고 창의력이 떠오르게 됐다는 단순한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어떠한 이론과 정확한 근거를 토대로 한 자료가 디자인에 접목했을 때 더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근거기반 디자인에서의 신경건축학 연구 결과2
요즘 병원을 가보면 예전과 비교했을 때 환경들이 많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 시원하게 개방감 있는 병원들이 생겨나고 있고, 심지어 입원실조차도 창을 통해 자연이 보이는 힐링 스페이스와 같은 공간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의료시설에서의 자연 채광 접목 시 입원 기간(감소), 혈압수치(양호), 약물 투여(감소), 헬스케어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 증가로, 결국 환자 케어에 대한 비용과 의료진 고용 등의 비용이 감소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주립대학 어빙 비더먼(Irving Biederman) 교수는 아름다운 노을이나 숲, 경치와 같은 풍광을 볼 때 엔도르핀과 관련된 신경세포가 활성화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아름다운 풍광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양의 모르핀을 우리 뇌에 투여해 주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라고 말하면서, “분명 행복에 대한 과학적 근거만으로 행복한 공간을 만들 수는 없겠지만, 건축가와 신경과학자의 협업을 통해 더 창의적이고 행복한 공간을 꿈꿀 수 있다는데 그 의의가 크다”라고 주장했다.
근거기반 디자인에서의 신경건축학 연구 결과3
또 신생아는 굉장히 소리에 예민하다고 한다. 영유아 같은 경우, 어렸을 때 듣는 그 모든 하루의 소리들이 아기한테 기억된다고 한다. 특히 간호사 선생님들이 막 호출하거나 부르는 소리 등 신생아실 안에도 여러 소음이 많아 이를 정부에서 규제한 나라들도 있다. 그만큼 신생아중환자실 및 어린이 병원에 있어 빛과 소리, 색채의 중요성이 언급되어, 유아 발달의 촉진을 위한 빛의 환경 고려 및 직원 호출을 위한 사운드 시스템을 조절한 것이다. 유아기에 있어 색채의 경험은 형태의 경험보다 더욱 직접적인 감각 정보를 제공한다고 나와 있다. 이 역시 근거를 기반으로 병원 환경에 적용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치유공간, 신경건축학을 현장에 불러내다
일본 오사카의 IGT 병원은, 말기 암 환자가 마지막으로 원하고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깊이 생각한 병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환자가 자신의 텃밭을 만들고 가꾸게 하는 등 다양한 모습들을 시도해 놓은 병원이다. 우리 한국에 있는 병원에서도 벤치마킹을 많이 시도했다. 실제 병실에서는 각각 개인 텃밭을 바라볼 수 있는 정원이 있고, 밖에 나가서 환자 본인의 테라스처럼 쓸 수 있는 공간들도 마련되어 있으며, 어떤 노인 환자들은 유러피안 앤틱 가구를 병실에 들여놓기도 했다. 그만큼 환자 중심의 치유 공간이 잘 조성된 병원이라 볼 수 있다.
국내 첫 인터벤션 특화 병원인 민트병원은 내가 디자인한 병원이다. 디자인은 먼저 ‘소통’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로비에 긴 테이블과 의자를 설치했는데, 여기서 환자들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기 병에 대한 불안감이 어느 정도 해소되기를 바랐다. 또 노출콘크리트의 천정과 다양한 컬러의 벽 마감재, 기하학적인 패턴 디자인, 북카페를 연상시키는 입원병동 등 다양한 시도를 감행했다. 그 때문인지 민트병원은 아시아 3대 디자인 어워드 중 하나인 ‘2018 K-디자인 어워드(K-Design Award & PRIZE 2018)’에서 Communication Space 부문 WINNER를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다른 병원의 대기실 공간들도 이렇게 긴 테이블과 체어를 설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버려진 건물 벽 선큰가든에 디지털월로 치유 가든을 만들었다. 병원 안에 디지털로 사계절의 자연을 담아낸 것이다. 어느 날은 꽃 모양, 또 다른 날은 자연이나 폭포 등 디지털월을 통해 다채로운 자연으로 치유 공간이 형성되는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또 시드니 어린이 병원 역시 자연 치유 정원이 특징이다. 어린이들의 동심을 디자인과 컬러로 알록달록하게 표현한 점에서 보는 순간 기분이 좋아진다. 이러한 버섯과 꽃, 나무가 그림이나 조형물로 연출됨으로써 어느 순간 아이들의 아픔까지 금세 잊게 해줄 것만 같다.
2. 작업치료사와 공간
작업치료사분들이 하는 일에 있어 그 역할이 워낙 많고 다양하다고 알고 있다. 나는 이를 디자이너의 시각과 관점에서 나름 분석해 보았다.
먼저 병원 상담실을 살펴보면, 책상의 폭이 좁아서 상담받는 환자나 환자 가족이 다리를 옆으로 돌려서 앉아야 한다. 그만큼 굉장히 불편한 채로 상담받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상담이 제대로 될지 의문이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책상 폭을 더 늘릴 수 없다면, 공간을 틀어서 남아있는 공간까지 활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책상의 폭도 늘릴 수 있다. 책상이 넓어지면 다리는 안으로 깊숙이 넣을 수 있고, 대면하는 얼굴까지 멀어져 편안한 상태에서 상담받을 수 있다. 또한 안락한 의자까지 배치한다면 더없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은 병원 안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다.
얼마 전에 이지은 협회장님께 “작업치료사분들이 공공 디자인에 관여한 부분이 있나요?”라고 여쭤봤다. 이지은 협회장님께서는 “정말 모든 사람들(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좀 편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나 디자인은 무엇일까에 대해서 많이 고민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찾아보니, 공공공간 디자인 및 접근성에 있어 작업치료의 역할에 대해서 사우스다코타 대학교(2020)의 제니 웰루(Jenny Welu)는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적 장벽으로 인해 장애인뿐 아니라 비장애인들까지 제약을 받는다’라는 말을 전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불안해하는 환경이 단지 아픈 사람뿐만 아니라 안 아픈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이곳에는 작업치료사들이 디자이너와 다 같이 협업을 하게 됐다. 협업은 주로 근거기반 디자인을 통한 디자인씽킹 프로세스 과정으로 진행됐는데, 대체로 사용자 인터뷰와 건축가나 조경전문가, 작업치료사, 관련 전문가의 지속적인 회의 및 관찰을 통해 모의 공간 제안서와 홍보자료 결과물을 만들었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도출해봤더니, 공공공간 디자인에 있어서 작업치료의 필요성과 적합성보다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 제시가 가능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에 작업치료의 대중적 홍보의 필요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결국 내가 하고 있는 신경 건축학이 접목된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 프로세스와 거의 비슷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맨 처음 서론에도 말했듯, 병원 디자인을 하다 보니 그전에는 혼자서도 디자인 진행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모든 분과 얘기를 나눠야지만 정확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작업치료사들도 도면을 보지 못한다고 디자이너에게만 맡기는 것이 아닌, 자신의 니즈들을 정확하게 개입해서 말해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지만 뭔가 확실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신경건축학 접목 사용자 중심 공간 디자인 사례들
이제부터 내가 진행한 몇 가지 디자인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강북삼성병원의 소화기 암센터의 경우, 대기실 전체에 자연 채광이 스며들도록 평면을 구성했다. 설계부터 시공까지 프로세스를 살펴보면, 현장 첫 방문 미팅을 진행하고, 프로젝트 관련 자료를 확보한 후, 1차 미팅, 지속적인 사용자 부서 간 미팅(10회), 평면 도출, 중간발표, 공간 디자인을 위한 심층 인터뷰 분석, 디자인 도출을 위한 체크리스트 정리, 디자인 최종정리, 도면납품, 공사 진행 과정을 거쳐 완성에 이르게 됐다. 일단 과정을 쉽게 설명한 것인데, 사실 의사, 간호사와 함께 아침 오전 7시에 거의 10번은 미팅을 한 것 같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디자인을 진행했는데, 프로세스만 해도 거의 평면도가 10번 이상 바뀌었고, 지금의 결과에 이르게 된 것이다.
G비뇨의학과의원의 경우, 사실 요즘에는 비뇨기과에 남성이나 여성이 가는 게 그렇게 쑥스럽지 않지만, 예전에는 여성들이 비뇨기과를 가는 것이 흔치 않았다. 이 때문에 당시, 여성들도 자연스럽게 비뇨기과를 갈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게 중점이었다. 그러다 보니 남자와 여자의 동선 분리, 그다음 진료실을 가운데에 셰어하는 것, 그리고 화장실이다. 화장실은 비뇨기과에서 꼭 필수적인 공간이다. 환자는 진료 전이나 후에 꼭 화장실을 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장실을 재미있고 멋지게 꾸며보고 싶었다. 설계부터 시공까지의 총 프로세스가 4개월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화장실 바닥에 파도가 넘실대는 디자인이나 꽃무늬 패턴 등을 넣어 신선한 기분을 만끽하게 했다.
이번에는 인지 능력에 대한 얘기를 나누려고 한다. 개인의 자서전적 공간에 대한 치유 환경을 보면, 요즘 우리나라가 요양병원 안에 치매 병동 시설들을 만들기 위해 계속 인허가를 받고 있다. 치매 병동이 만들어지면 나중에 이제 치매 전문 병원으로도 승격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요즘 치매 병동은 예전과 개념이 많이 바뀌었다. 시지노인병원 치매 전문 병동의 경우 회상 효과를 도입한 치유 정원의 공간 디자인으로 진행했다. 어르신들의 나름 스토리가 다 다르듯이 과거의 모습과 분위기를 회상할 수 있는 디자인을 체계적으로 진행한 것이 특징이다. 과거 대구 역 앞에서 물건을 팔거나 추억의 다방, 사진관 등을 실제로 공간 안에 디자인함으로써 회유 공간을 만들어 회상할 수 있도록 했다.
장례식장 역시 예전과 비교해 개념이 많이 바뀌고 있다. 과거 장례식장은 서로가 대면했던 시절이었는데, 코로나 이후에 장례식장은 한산하기 그지없다. 이에 장례식장의 니즈들이 많이 바뀌어서 가톨릭대학교 장례식장의 경우, 빛과 자연이 스며드는 따스한 위로의 공간으로 변화를 주었다. 안치실은 돌아가신 분들을 엄숙하게 보내드리고자 인간다운 공간을 중점으로 전체 리모델링 계획이 바뀌었다. 특히 지하 2층과 지하 1층은 벽에 디지털월로 포인트를 주어 하나도 어둡거나 우울한 느낌이 아닌, 자연 채광이 스며든 것 같은 느낌으로 디자인했다.
마지막 구로 예수수도회 영성센터의 경우, 피정의집 수녀원을 겸비한 공간인데, 기존의 수녀원 공간을 새롭게 탈바꿈한 것이 특징이다.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수녀원 지원을 하지 않아 수녀님들이 많이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남아도는 수녀원 공간을 그저 비워둘 수 없어 일부는 커뮤니티 오픈 공간으로 변화를 준 것이다. 바꾸고 난 후 영성센터의 힐링 존으로, 일반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 공간으로 활용하게 됐다. 좀 웃픈 일은, 직업상 디자이너다 보니 건물을 볼 때 공간 내부부터 보게 되는데, 건축가를 폄허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건축가는 대부분 건물의 규모나 인허가부터 보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바깥에 증축하도록 설계해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드는 것이다. 사실 수녀님들은 돈이 많지 않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든 보완해서 엘리베이터를 최대한 건물 안에 설치하려고 계획했다. 특히 용적률 변화 없이 건축 인허가 부분에서도 대수선이 아닌 일부만 바꿀 수 있도록 리모델링 해서 모두의 만족을 끌어내기도 했다. 또한 굉장히 남루하고 촌스러운 기존 공간이었는데, 천장이 좀 낮아서 더 높이지는 못했지만, 영성 센터의 메인으로 잡고 온화한 기도실을 만들었다. 이곳은 현재 사람들이 조용히 침묵하면서 기도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더욱이 기존의 버려진 책상이나 책장을 활용해서 오래된 서고를 보는듯한 도서관을 만들기도 했다. 이 역시 사용자와의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을 토대로 최상의 결과물을 완성해 냈으며, 결국에 사람의 힘이 중요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그만큼 사용자 역시 적극적으로 참여해야만 혁신적인 마인드의 공간이 나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그냥 맡겨버리면 해놓고 나서 다시 바꾸는 일이 발생해 돈이 두 배로 들게 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팁을 전하고자 한다. 이제까지 공간의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 세미나가 끝나고 집 현관문을 열어보고 한번 생각해 보자. 어떤 집의 모습인가? 문을 열고 가면 신발장에 신발을 넣을 공간이 부족할 정도로 신발이 쫙 늘어선 공간인가? 그렇다면 일단 정리해 보자. 현관부터 깨끗하게 정리 정돈이 되면 집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머리가 상쾌해진다. 특히 현관문에 풍경 종을 달거나 은은한 향이 나는 디퓨저, 혹은 가족사진이나 그림, 식물 등으로 현관의 분위기를 바꾸면 더없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현관 사우라고 한다. 집 현관에 빛과 그림, 식물, 소리로 변화를 주면, 들어오는 순간부터 힐링의 장소가 된다. 가족의 행복과 화목이 깃든 장소가 될 수 있게 오늘 바로 시작해 보자.』
글. 박하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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